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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필드/축구

K리그의 레전드 이동국, 그러나 끝내 불운했던 월드컵 무대

by 투필드 2014. 4. 21.

K리그의 거장 이동국, 그러나 끝까지 불운했던 월드컵과의 인연

  

    

■ 홍명보감독의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엔트리 확정과 이동국

  

얼마 전 대표팀의 홍명보감독은 2014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23명의 엔트리를 확정하고, 10%인 2~3명의 선수를 최종 확정하겠다고 하면서 깜짝 발탁은 없을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나머지 선수는 아마도 미드필드와 디펜스필드 포지션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동국의 월드컵대표팀 발탁은 결국 이렇게 종지부를 찍을듯 합니다.

   

 

이동국은 36세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축구선수로서, 그것도 최전방 공격수로서 이 나이에 이르도록 최고의 선수로 남아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주말에 열린 K리그클래식 9라운드에서도 이동국은 결승골을 작렬시키며 전남을 꺾고 전북이 선두로 올라서는데 기여했습니다.

아직까지 은퇴를 논할 필요는 없으나 노장 이동국은 이제 K리그클래식에서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향후에도 K리그클래식을 이야기 할 때 이동국의 존재를 빼고 회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동국의 대표팀 경력도 화려합니다. 그리고 각 연령대 대표팀과 국가 대표팀에 모두 차출되면서 팀을 위해 지나친 혹사 논란이 있을 정도로 헌신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동국에게 월드컵과의 인연은 가히 혹독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월드컵 유망주에서 비운의 스타로

  

차세대 한국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대형 공격수의 등장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안정환, 고종수와 함께 K리그 르네상스 시기를 이끌었던 트리오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조별예선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차세대 스트라이커에 대한 희망이 된 임펙트 있는 중거리슛을 선보이며 네덜란드전 대패 속에서 유일한 위안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던 시기, 이동국은 돌연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됩니다.

바로 강력한 체력과 더블포지션을 바탕으로 한 토탈싸커를 추구하던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팀의 히딩크감독에 의해서였죠.  

당시 아직 20대 초반의 이동국이 느꼈을 좌절과 상심은 가히 짐작할만 합니다. 

그래도 이동국은 이러한 상실감과 안티팬들의 온갖 조롱에도 불구하고 상무에 입단한뒤 묵묵히 재기에 성공하여 다시 최고의 선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회자한대로 정말 축구인생에 있어 최선을 다해 2006년 독일월드컵을 준비합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아드보카드감독은 이동국에게 '너는 클로제 못지 않다'며 자심감을 불어주는 등.. 이동국에 대한 신뢰도 두터웠고, 팬들도 다시 돌아온 이동국을 반겨주던 분위기였죠.

이동국은 이제 독일월드컵 무대에서 펼칠 활약으로 명예를 회복하는 일만 남은듯 했습니다.

  

그러나 황선홍 감독이 1998 프랑스월드컵 직전에 그러했듯 이동국은 뜻하지 않은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독일월드컵 출전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 끝내 황선홍이 되지 못한 2010년 남아공월드컵

  

2010년 남아공월드컵,  우루과이와의 16강전..  

우리나라는 예상을 뒤엎고 우루과이를 경기내용 면에서 충분히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날 경기의 변수는 바로 계속 내리는 빗물과 수아레스의 기습적인 득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경기 종료 직전 박지성의 쓰루패스를 정확한 볼터치로 이어 받은 이동국이 우루과이 골키퍼와 1대1 상황을 연출합니다.

그러나 빗물에 젖은 볼이 약간 빗맞아 골문으로 들어가기 직전 상대 수비수에 의해 걷어내지는 순간..

대표팀은 원정 16강에 머물게 되고 이동국의 월드컵 무대는 마지막이 됩니다.

  

 

만약 이 골이 들어갔다면.. 그래서 우리가 8강에 진출했다면(당시 8강전 상대가 아프리카의 가나였던 것으로 기억됨), 우루과이가 4강에 진입했듯이, 우리 대표팀 역시 아마도 2002년의 성적을 원정 무대에서 이루어낼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동국은 제2의 황선홍이 되어 명예를 회복하고, 2002 한일월드컵을 끝으로 은퇴를 한 황선홍과 달리 이동국은 지금까지 현역 선수로 활동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렸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우루과이전에서 내렸던 빗물은 그라운드에서 흘린 우리 선수들의 눈물이 되고 말았죠...

  

   

■ 비운의 스타가 아닌 K리그의 클래식으로 기억될 이동국

  

하지만 이제 이동국을 더 이상 불운했던 비운의 스타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비록 월드컵과 인연이 별로 없었지만, 이동국은 국내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임에는 틀림없으며, 특히 K리그클래식에서 토종 스트라이커의 상징성만으로도 이동국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정점에서 퇴출,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 유럽진출 실패 온갖 안티팬에게 시달리면서도 이동국은 결코 분노하거나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반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재활과 노력으로 재기에 성공했으며, 철저한 자기 관리로 36세의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K리그클래식 최강팀 전북의 핵심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로 이러한 부분이 나중에 이동국을 떠올릴 때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제 이동국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노력과 재기의 아름다운 과정을 보여주었던 선수이자,, 더 이상 비운의 스타가 아닌 'K리그클래식의 클래식'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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